뉴 제네레이션. 세월에 지친 늙은 왕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야속하게 저무는 석양을 탓하고 원망하며 고개 숙이는 것뿐. 젊은 왕은 늙은 그가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젊음을 손에 쥐고 있고, 또 그에게는 더 기대할 수 없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F1 월드챔피언 7회를 달성한 루이스 해밀턴(36.메르세데스)이라 할지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제아무리 잘난 인물도 오랜 시간 집권하면 난세의 영웅이라는 처음의 대우와 달리, 치졸한 악당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원치 않는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원래 민중이란, 질릴 때쯤이면 또 다른 히어로의 탄생을 고대하니 말이다.

검은 황제, 해밀턴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2021시즌 마지막 라운드인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막스 베르스타펜(24.레드불)에게 패배하고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긴 후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소식이라곤 영국 윈저 캐슬에서 찰스 왕세자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것과 왕좌를 빼앗겼다는 상실감 탓인지 아니면 FIA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FIA 공식 연말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제대로 삐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밀턴은 분명 아부다비 GP에서 마지막 한 바퀴 전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대로 체커기를 받기만 하면, 라운드 우승과 동시에 월드챔피언 8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F1 역사에 새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FIA의 경기 운영 탓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베르스타펜 입장에서는 크나큰 행운이었지만, 해밀턴에게는 신(FIA)의 농간이라고 해석될 만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해밀턴은 현역 F1 드라이버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최고 인플루언서답지 않게 여태껏 시즌 마지막 경기에 대한 소감을 남기지 않았고,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팬들을 위한 축하 메시지도 게재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그가 은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현재 해밀턴은 2023시즌까지 메르세데스와 계약을 한 상태다. 다만 F1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계약해지와 변경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은퇴 의혹과 루머가 나도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해밀턴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점 은퇴를 선언한다고 한다면, 기를 쓰고 말리고 싶다. 증명해 보여야 한다. 스스로 굉장히 분하고 억울하겠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레이스다. FIA의 계략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면, 다음 시즌 서킷에서 베르스타펜을 누르면 된다. 지금 이대로 은퇴하면 ‘지 잘나갈 때만 좋아하고 남 잘되는 건 배 아파 죽는, 못난 좀생이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다.

많은 팬을 위해서라도 F1 머신에 다시 올라줬으면 한다. 해밀턴은 실력과 스타성 모두 갖춘 보기 드문 드라이버다. 베르스타펜이 빠른 드라이버라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스타성도 있다고 덧붙인다면 동의하지 못하겠다. 전 세계에 20개만 있는 시트를 차지할 수 있는 드라이빙 퍼포먼스도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스타가 된다는 것은 노력과 별개로 해밀턴처럼 타고나야 한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전 세계에 있다. 8회 월드챔피언 달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팬들을 위해서라도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드라이빙을 조금 더 보여줘야 한다.

팬을 위한 증명은 곧 역사와 커리어가 될 것이다. 포뮬러 원 70년 역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드라이버가 월드챔피언 아니 그랑프리 우승조차 하지 못하고 서킷을 떠났다. 반면 해밀턴은 그랑프리 통산 103회 우승(역대 1위), 월드챔피언 7회(마이클 슈마허) 등 전설적인 기록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이룰 수 있는 건 전부 다 이뤘다. 이제 남은 건 F1 그 자체로 불리는 슈마허와 같은 넘버 7을 8로 바꾸는 것뿐이다. 

해밀턴이 시즌 내내 보여준 퍼포먼스는 넘버 8을 갖기에 충분했다. 단지 운이 따르지 못했을 뿐. 절망을 딛고 일어서 다시 시트에 올라야 한다. 슈마허와의 타이기록으로는 ‘올타임 넘버원’ 배지를 가질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해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너무 아깝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건 막을 수 없다. 다만 나의 영웅이 한번 더 왕위에 올라 활짝 웃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F1의 검은 황제, 해밀턴 시대가 영원하기를 바랐던 팬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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