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원(F1) 팬들은 생기를 잃었다. 지난 주말 아부다비 그랑프리를 끝으로 2022시즌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F1에 살고 F1에 죽는 그들에게 내년 3월까지 레이스 위크가 없다는 사실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F1 2022시즌 다시 보기. 1편은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오늘의 선수. 

2016시즌 처음 도입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는 100% 팬 투표 결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데 보통 해당 그랑프리 순위와 큰 관계없이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가 선정된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시즌 동안 22명의 선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렇다면 올 시즌에는 어떤 선수들이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뽑혔을까? 순서는 최다 수상자부터다.

막스 베르스타펜

2022시즌 챔프이자 월드 챔피언 2회 드라이버 레드불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올 시즌 총 5번 선정되며 1위에 올랐다. 4·5라운드 에밀리아 로마냐와 마이애미에서 연달아 뽑혔고 13·14·15라운드 헝가리,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3회 연속으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에 선정됐다. 이중 가장 많은 34.2%의 득표율을 기록한 경기는 13라운드 헝가리 그랑프리. 베르스타펜은 레이스카 파워 유닛 이슈로 퀄리파잉(예선전)에서 10위에 그치며 본선 레이스에서 10번 그리드를 배정받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스타트 직후 차원이 다른 스피드로 헝가로링 서킷을 지배했다. 레이스 초반 알핀의 에스테반 오콘을 넘으며 7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고 중반에는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를 제치며 3위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기어코 2위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턴을 7.834초 차이로 따돌리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팬들을 잔뜩 흥분하게 만드는 추월 쇼를 수차례 선보였으니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되는 건 당연할 터. 베르스타펜은 통산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를 36회 차지하며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샤를 르클레르

2022년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가 총 4번으로 2위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르클레르는 숫자 ‘2’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2022시즌 드라이버 챔피언십 최종 순위도 2위고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2등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르클레르는 1·2·3라운드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연이어 선정됐고 9라운드 캐나다에서 마지막으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를 수상했다. 특히 바레인 그랑프리에서는 28.3%의 득표율로 선정됐다.   

당시 르클레르는 퀄리파잉부터 완벽히 장악했다. 2022시즌 초반 한정으로 챔프카였던 페라리 F1-75에 올라 5.412km의 사키르 서킷을 단 1분 30초 558만에 주파하며 막스 베르스타펜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르끌레르의 활약은 본선 레이스에서도 이어졌다. 레이스 내내 경기를 지배하더니 결국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즌 첫 경기를 ‘폴 투 윈’으로 장식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전 세계 티포시들은 페라리와 르클레르가 올 시즌 제대로 사고 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르클레르는 현재까지 총 11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됐다. 이 부문 공동 4위.    

세르히오 페레즈

올 시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에 3번 선정된 레드불의 세르히오 페레즈가 공동 3위다. 뒤이어 등장할 루이스 해밀턴 그리고 세바스티안 베텔과 동률인데 페레즈를 앞에 세운 이유는 지난 5월 모나코에서의 감동이 아직 잊히지 않기 때문. 정말 강렬했다. 페레즈는 7라운드 모나코, 10라운드 영국, 17라운드 싱가폴에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를 수상했는데 가장 많은 득표율로 선정된 건 27.6%를 기록한 모나코 그랑프리였다. 당시 페레즈는 시즌 첫 번째 우승을 F1의 상징과도 같은 모나코에서 신고하는데 시작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먼저 모나코 서킷은 트랙의 폭이 좁아 추월이 어렵기 때문에 퀄리파잉 성적이 정말 중요한데 페레즈는 페라리 듀오에 밀려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페레즈는 이 과정에서 단독 사고를 일으켜 레이스카를 거하게 해 먹는(?) 실수를 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인 것은 이 사고 여파로 세션이 조기 종료되면서 팀메이트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마지막 플라잉랩을 마치지 못했다는 것.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페레즈는 결과적으로 르클레르와 사인츠는 물론 베르스타펜마저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고 현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페레즈는 현재까지 총 11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돼 이 부문 공동 4위다.  

루이스 해밀턴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턴이 공동 3위다. 2007년 데뷔 후 최악의 시즌(드라이버 챔피언십 6위)을 보냈다. 이로 인해 많은 기록이 중단됐다. 대표적으로 15시즌 동안 이어온 폴 포지션 획득 기록과 매 시즌 우승 달성 기록이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에는 3번이나 선정됐다. 6라운드 스페인, 8라운드 아제르바이잔, 21라운드 브라질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17.1%의 득표율을 기록한 브라질 그랑프리였다.

득표율만 놓고 보면 22.8%를 기록한 스페인이 제일이지만 브라질 명예시민 자격으로 참가해 시즌 첫 우승도 가능했던 지난 브라질 그랑프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해밀턴은 스프린트 경주에서 3위를 기록해 3번 그리드를 배정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사인츠가 엔진 교체 페널티를 받으면서 본선 레이스에서 2번 그리드에서 출발하는 행운을 맞게 된다. 물론 경기 초반 막스 베르스타펜과 충돌하면서 순위가 8위까지 떨어지는 위기가 찾아왔지만 기어코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밀턴은 지금까지 총 13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돼 이 부문 3위에 위치해 있다. 

세바스티안 베텔

애스턴마틴의 세바스티안 베텔이 또 다른 공동 3위의 주인공이다. 베텔은 지난 주말 야스 마리나 서킷에서 은퇴전을 치렀다. 커리어 통산 299번째 그랑프리였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월드 챔피언 4회 드라이버는 2007년 데뷔 이후 16시즌 동안의 F1 드라이버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베텔은 18·19라운드 일본과 미국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 아부다비에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뽑혔다. 특히 아부다비 그랑프리의 경우 55.6%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올 시즌 가장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이날 베텔은 화려한 추월 쇼를 선보이며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는데 결과적으로 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다. 

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베텔은 레이스 중반 7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는데 소속팀의 아쉬운 타이어 전략(원 스톱)으로 결국 10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팀메이트인 랜스 스트롤이 투 스톱 전략으로 14번 그리드에서 출발해 8위로 경기를 마친 걸 감안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에 따라 흥미로운 기록도 탄생했다. 베텔이 처음 따낸 포인트와 마지막으로 따낸 포인트가 1점으로 동일한 것이다. 베텔은 2007시즌 7라운드 미국 그랑프리에서 8위에 오르며 1점을 획득한 바 있다. 참고로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1위부터 8위까지만 포인트가 주어졌고 최고 득점은 10점, 최저 득점은 1점이었다. 베텔은 총 23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돼 이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카를로스 사인츠

페라리의 카를로스 사인츠는 12라운드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됐다. 올 시즌 딱 한 번에 불과하지만 득표율이 40.4%로 아부다비의 세바스티안 베텔 이후 2번째로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사인츠는 5위에 그친 것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유는 19번 그리드에서 출발해서 경이로운 추월 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의 꽃은 오버테이크, 즉 추월이다. 

사인츠가 1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건 퀄리파잉에서 9위를 기록한 것에 더해 시즌당 2개까지만 허용되는 CE(Control Electronics) 부품을 1개 더 초과하면서 10그리드 페널티를 받았기 때문. 사인츠에게 이러한 시련은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레이스 초반부터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더니 결국 5위로 체커기를 받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여하튼 사인츠는 현재까지 총 2회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에 선정된 바 있다.  

닉 드 브리스

16라운드 이탈리아 그랑프리. 올 시즌 가장 극적인 드라마가 쓰여진 곳이다. 영화 시나리오도 이렇게 쓰면 욕먹기에 십상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주인공은 2023시즌부터 알파타우리에서 활약하는 닉 드 브리스. 퀄리파잉에서 13위를 기록하고 본선 레이스에서 9위를 기록해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24.8%의 득표율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됐다. 가장 큰 이유는 정규 드라이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드 브리스는 프리 프랙티스(연습경기) 2세션이 끝난 시점 윌리엄스로부터 맹장염에 걸린 알렉산더 알본을 대신해 이번 그랑프리에 출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급작스럽게 윌리엄스 FW44 레이스카에 몸을 실었다. 

결과는 대이변이었다. 대타로 출전한 F1 데뷔 무대에서 9위를 기록하며 2포인트를 따낸 것이다. 풀타임 드라이버인 니콜라스 라티피가 16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1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알본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알본 역시 21개 라운드에 나서며 4포인트만 따냈을 뿐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드 브리스는 오랜 리저브 드라이버 생활을 청산하고 2023시즌 알파타우리에서 풀타임 드라이버로 활약하게 됐다. 신데렐라 스토리 그 자체랄까? 드 브리스의 경우 이날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된 게 처음이었다.

믹 슈마허

2022시즌을 끝으로 하스를 떠나는 믹 슈마허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때는 11라운드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이날 슈마허는 팀메이트인 케빈 마그누센(8위)을 꺾음과 동시에 2021년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인 6위를 기록했다. 포인트권에 진입한 건 커리어 통산 두 번째. 팬들도 이에 화답하듯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통산 1회)로 뽑아줬다. 득표율은 24.5%. 하지만 슈마허가 이날의 달콤함을 언제쯤 다시 맛보게 될지는 미지수다. 

슈마허가 2023시즌 시트를 잃었다. 하스가 니코 휠켄버그와 계약했기 때문. 슈마허가 하스에게 선택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많이 들어서다. 하스는 2021시즌 기준 슈마허의 사고 처리 비용으로 약 64억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해당 시즌 20명의 드라이버 중 단연코 1위에 해당한다. 성적이 좋으면 눈감아줄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팀메이트인 마그누센과 비교 시 퀄리파잉 전적은 16 대 6으로 뒤진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포인트로 따져도 마그누센(25p)보다 13포인트가 부족하다. 향후 슈마허가 다시 F1 레이스카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다니엘 리카르도

마지막은 올 시즌을 끝으로 맥라렌을 떠나는 다니엘 리카르도다. 20라운드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24.4%의 득표율로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로 선정됐던 리카르도. 이날 알파타우리의 유키 츠노다와의 접촉으로 10초 페널티를 받은 것에도 불구하고 7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커리어 통산 10번째 드라이버 오브 더 데이 수상이었다. 이 부문 역대 6위에 해당하는데 당분간은 기록을 경신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맥라렌이 2021시즌 대비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떨어진 리카르도와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2023시즌까지 계약된 상태였지만 팀메이트인 랜도 노리스와 성적 차이가 너무 심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2023시즌 드라이버 라인업이 확정된 가운데 현재 리카르도는 레드불과 링크되고 있는 상황인데 역할은 리저브 드라이버다. 최근 크리스티안 호너 레드불 감독도 언급한 적 있고 리카르도 본인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레드불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시즌 레드불 패덕에 서성이는 리카르도를 볼지도 모를 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모터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