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바람이 불면서 자동차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느니, 기존 내연차 브랜드들이 몰락하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전통의 강자들이 100년 넘게 차를 만들면서 쌓아온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한국 전기차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내세운 EQE는 이같은 벤츠의 클래스가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달 말 국내 출시된 EQE를 홍보하기 위해 11일부터 이틀간 미디어 시승회를 개최했다. 코스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더 뉴 EQE 파빌리온'에서 출발해 강원도 원주시의 한 레스토랑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왕복 200km 정도의 구간이다.

출발에 앞서 살펴본 EQE는 상위 모델인 EQS와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두 차량은 공기역학을 위해 둥글둥글하게 다듬은 라인이나 패스트백 스타일로 깎은 지붕 라인 등 전반적인 디자인 요소들을 공유한다.

물론 세세하게 뜯어보면 헤드램프 사이를 가로지르는 LED 라인이 EQS에만 들어간다거나 하는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전 정보가 없다면 이게 EQS인지 EQE인지 구분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강원도로 갈 때는 뒷좌석에 탔다. 현행 E클래스(2,940mm)보다 18cm나 긴 3,120mm의 휠베이스 덕분에 EQE의 2열은 대단히 넓고 여유로웠다. 무릎 앞에 주먹 몇 개 들어가는지 측정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뒷좌석 공간은 크고 넉넉했다.

하지만 공기 역학을 위해 지붕 라인을 쿠페 스타일로 다듬었다 보니 머리 위 공간은 꽤나 손해를 봤다. 특히 파노라마 선루프를 개방하지 않았을 때는 커버에 머리카락이 살짝살짝 닿았다.

또한 2열 시트 등받이가 단단한 편이라 등을 푹신하게 감싸주는 안락함은 느낄 수 없었다.

뒷자리에서 본 1열 디자인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태블릿 PC처럼 생긴 12.3인치 디지털 계기반과 12.8인치 OLED 센터 디스플레이, 운전자와 동승자를 감싸듯이 배치된 앰비언트 라이트는 미래차 감성을 극대화한다.

시승차인 350+의 경우 벤츠가 자랑하는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하이퍼스크린'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인 디자인 완성도가 워낙 뛰어난데다, 각종 기능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어 하이퍼스크린의 부재가 딱히 불만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로 레이어'다. 사용 빈도가 높은 메뉴들을 화면에 알아서 배치해줘 더욱 쉽게 빠르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이다. 인공지능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어 사용자 패턴에 맞는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령 퇴근길에 매번 아내와 통화하는 경우, 그 시간마다 전화 버튼을 화면에 띄워주는 식이다. 그 외에도 겨울에 정기적으로 열선 시트를 켜면 온도가 낮아졌을 때 자동으로 열선 시트 작동을 제안하는 등 사용자와 연관성 있다고 판단되는 기능들을 자동으로 추천해준다고 한다.

또한 EQE엔 국내 출시된 메르세데스-모델 최초로 센터 디스플레이 게임 기능이 탑재됐다. 짝 맞추기, 셔플퍽(에어 하키), 스도쿠 등 간단하면서도 재밌는 게임들이 준비돼 있어 전기 충전 중이나 휴식할 때 유용하게 사용 가능하다.

EQE가 지닌 최고 강점은 단연 주행 감성이다. 서울 가는 길 직접 운전하며 느낀 EQE의 부드러움과 안락함, 정숙함은 내연기관 시절 최강자로 불리던 메르세데스-벤츠의 실력을 고스란히 전기차에 구현해놓은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점은 기존 자동차를 타다 전기차로 넘어갔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을 대단히 잘 잡아냈다는 것이다. 전기차는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운전할 때 느낌이 내연기관차와는 꽤나 다른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폭발적인 가속 능력과 같은 전기차만의 특성들을 전면에 내세워왔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는 지금껏 자신들이 잘 해왔던 것들을 전기차에서도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은 것 같다. 요철을 걸러내는 느낌이나 고속 주행 시의 안정성, 부드럽게 미끄러져나가는 크루징 능력 등 프리미엄 대형 세단 본연의 가치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느 전기차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몸이 찌릿해질 정도의 압도적인 가속감은 EQE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6.4초(제조사 발표 기준)로 전기차치곤 다소 느린 편이다.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거나 하진 않다. 최고 출력 288마력(215kW), 최대 토크 57.6kgf.m(565Nm)의 후륜 싱글 모터는 고속 영역에서 엑셀 페달을 밟아도 계속해서 안정적인 가속 능력을 보여준다. 출력 문제로 불만 가질 일은 좀처럼 없을 것 같다.

완성도 높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도 EQE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요소다. 앞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가감속해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달리는 차선 유지 보조 모두 안정적으로 해내 장거리 주행 시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출퇴근길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디지털 클러스터는 차선이나 주변 차량들을 감지해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차량 변화가 이 그래픽에 그래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방향지시등을 켜거나 브레이크를 밟으면 화면 속 EQE에도 똑같이 불이 들어온다. 심지어 사이드 미러에 점등되는 후측방 경고등까지 재현해준다.

전기차에서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전비'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88.89kWh의 배터리를 탑재해 환경부 기준 471km(복합)를 인증받았는데, 실주행 시에는 500km 이상은 무난히 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인 남성 2명이 에어컨과 통풍 시트를 빵빵하게 틀고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100km 정도를 고속 위주로 달린 뒤 확인한 잔여 주행 거리는 409km였다.

같은 조건으로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달린 후엔 주행 거리가 280km 정도 남아있었다. 효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상당히 거칠게 달렸음에도 공인 수치보다 더 많은 거리를 갈 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고속으로 달리는 중에도 4.95km/kWh의 전비가 나왔다. 차량 무게가 2,355kg으로 무거운 편인 걸 감안하면 실주행 시의 전력 관리 능력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EQE의 공인 전비는 복합 기준 4.3km/kWh다.

이날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측은 EQE를 "벤츠가 전기 모빌리티 브랜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 "풀사이즈 전기차로서 럭셔리 전기 세단의 정점을 찍을 것"이라 소개하며 연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직접 만나본 EQE는 벤츠가 그러한 자신감을 보이기에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웠다. 지금껏 E클래스가 해온 역할을 전기차 시대에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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